다큐 On 미리보기

 

오곡도에 봄이 오면

 

정기 여객선이 끊긴 고립무원의 섬, 오곡도.

50가구, 300여 명이 넘게 살던 시절이 무색하게

이제는 학교도 사라지고

전경 초소도 폐허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도 공평하게

계절은 돌아온다. 빈집이 더 많아진 섬에

가장 먼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삶, 누군가에게는 안식처,

누군가에게는 놀이터가 되어주는 오곡도는

올해도 어김없이 하나의 터전이 되어

봄을 누리게 한다.

 

8명 남짓한 주민들만이 남은 작은 섬.

소박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오곡도의 봄을 담는다.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섬을 지키는 사람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에 속하는

작은 섬 오곡도. 생김새가 까마귀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곡도는 과거 50가구

300여 명이 넘게 살던 활기찬 섬이었다.

이제는 다 떠나고 8명 남짓의 주민만이 남아

섬을 지키며 살고 있다.

 

오곡도에서 나고 자란 오곡도 토박이

고정옥(81) 할아버지는 섬의 이장이자 어촌계장.

초등학교도 생기기 전이던 어린 시절엔 서당을

다녔고,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 할아버지는 섬의

살아있는 역사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습관처럼 밭으로 나가 부지런히

일을 하는 아내 박두연(78) 할머니와 함께

고깃배를 띄우고 씨앗을 뿌려 자식 넷을 키워

뭍으로 떠나보냈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는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다.

 

여객선이 끊어진 지 오래인 오지 중의 오지

오곡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육지와 가까운

섬에서 낚싯배를 빌려 타고 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섬에 물까지 부족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상이 수두룩하다. 자식들은

살기 편한 도시로 떠나보냈지만 그럼에도

‘내가 난 곳’이 제일 좋다며 여전히 섬을 지키는

사람들. 오늘도 장작을 지피고 밭을 일구며

부부에게 주어진 오곡도에서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낸다.

 

예고 영상 

 

 

▶’나는야 오곡도가 좋아라‘

여러 모양의 행복을 찾아온 곳

 

오곡도에는 ‘오실이 쉰 두 강정’이라는 말이 있다.

‘오실이’는 오곡도의 옛 지명이고, ‘강정’은

해안 바위 사이의 절벽 틈 계곡을 일컫는 말이다.

오곡도에는 절벽 틈 계곡이 52개가 있으며,

그만큼 험한 지형을 가진 섬이라는 뜻이다.

험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주민 중 일부는 제 발로

오곡도로 찾아 들어왔다. 섬의 남쪽 마을에서

염소와 닭을 키우고 문어와 전복 등의 해산물을

직접 잡고 채취해 먹으며 살아가는

고재용(64), 이정숙(64) 씨 부부가 그런 경우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5년 전 섬에 정착한

고재용 씨는 오곡도가 고향이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일찍이 고향을 떠나 통영 시내에 살았던

그는 어린 시절 소를 몰고 옥수수를 따 먹으며

자란 추억을 잊지 못하고 고향에서 진득하니

살아보고 싶어 돌아왔단다. 부친은 돌아가시고

고향 친구들도 모두 도시로 떠나고 없지만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이정숙 씨와 함께

서로를 둘도 없는 친구로 삼아 소박하지만

만족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고재용 씨 부부 외에도 각자의 삶을 찾아

오곡도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이 섬은 살기에

불편한데 왜 하필 이곳이냐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답한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섬’이라고.

사람은 적지만 덕분에 다른 생명이 넘치는 섬.

경사가 가파르고 밭이 삐딱해서 농사짓기가

불편하지만 굴러 죽은 사람은 없으니 괜찮다는

만족을 가르쳐주는 섬. 주민들은 오곡도가 주는

여러 모양의 충분한 행복으로 삶을 가꾸어 간다.

 

▶ 오곡도에 봄이 밀려든다

 

오곡도의 해발 153m 남짓한 마을 야산은

원시림으로 울창하고 겨울에도 방풍나물이

자라는 등 먹을거리가 다양해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바다를 헤엄쳐 들어올 만큼

풍성한 섬이다. 더욱이 봄이면 머위, 쑥, 두릅,

달래, 냉이 등의 봄나물이 지천으로 넘쳐난다.

 

때문에 오곡도 주민들에겐 자식들의

방문만큼이나 반가운 계절이 봄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더욱 번성한 자연은

봄이면 그 풍요로움을 맘껏 뽐낸다. 직접 구해다

심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이 자연스레 퍼져 거저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주민들은 봄이면 저절로 부지런해진다.

 

남쪽에 위치해 빨리 봄기운이 도달한 오곡도엔

여기저기 동백꽃길이 깔린다. 그 길을 거닐고

산에서 캔 쑥으로 쑥버무리와 도다리쑥국을

만들어 소박한 밥상을 나누다 보면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고립된

섬이지만 결코 고독하지 않은 섬 오곡도.

그곳의 생생한 봄기운을 전한다.

 

■ 방송일시 : 2023년 3월 31일

(금) 밤 10시 50분 KBS1TV

■ 책임 프로듀서 : 손종호

■ 프로듀서 : 송철훈

■ 연출 : 김세건

■ 글·구성 : 조민경

■ 내레이션 : 배우 박철민

■ 제작사 : ㈜알파타우러스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지역의 부활 2

빈집, 가능성을 채우다

 

전국 빈집 150만 호 시대,

지역이 텅 비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동네를 지키는 건

노인과 주인 잃은 빈집뿐.

방치된 빈집은 안전과 범죄의 우려를 낳고

이는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며

인구이탈과 지역소멸을 재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지역의 골칫거리였던 빈집이 관점에 따라

지역소멸을 막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데!

흉물스러운 빈집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쓸모없는

공간을 가능성으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말엔 나만의 시골 아지트에서 쉬어볼까?

빈집에서 실현한 5도 2촌의 꿈

 

 

 

 

2022년, 20년간 몸담았던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를 퇴사하고

공간디자이너와 가구 브랜드 창업을 준비 중인

박소연 씨. 주중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시골집에서 휴식하는

5도 2촌 생활을 한 지 4개월째다.

예산과 취향에 맞는 빈집을 수소문하느라

서울에서 200km나 떨어진 연고 없는

충남 금산까지 내려갔다. 마을 골목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집이라, 맨끝집이라 이름 붙인

붉은 양철 지붕집. ‘귀신의 집’ 체험하려는 거냐

흉흉한 소리도 들었지만, 잡풀이 무성하게

뒤덮인 폐가(廢家)가 소연 씨의 눈엔

동화 속 집 같았다. 자신을 돌아보며

오래된 폐가를 직접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테리어 시공팀을 쫓아다니며 배운 기술로

미장부터 양철지붕 칠까지 시골집 구석구석이

그녀만의 감성으로 채워졌다. 맨끝집은 지금도

변신 중이다. 직접 만든 가구들로 공간을

꾸미고 그녀가 없는 시간엔 다른 이들과 공유할

계획도 세웠다. 흉물스러운 시골 폐가가

박소연 씨에겐 ‘나만의 집’ 실현과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되었다.

 

예고 영상 

 

 

시골살이 로망의 모델하우스가 된

200살 된 폐가(廢家)

빈집의 변신, 청년이 모인다.

 

전라남도는 전국에서 빈집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 강진 병영은 하멜식 담장과 시내가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 빈집과 노인들이

대다수라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강진 병영에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의 시작은 10년간 중국 생활을 하다

귀국한 장성현, 권경진 부부. 시골살이를

꿈꿨던 부부는 200년 된 폐가에 반해 서울에서도

다섯 시간이나 떨어진 전남 강진에 정착했다.

지붕이 틀어져 다 쓰러져가던 흉가는 2년에

걸친 수리 끝에, 커다란 정원과 아늑한 한옥이

어우러진 스위트홈으로 탈바꿈했다. 마음에 쏙

드는 주거지가 마련되자, 다음 문제는 먹고

살아가는 일. 아내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남편은 ‘편들’이라는 강진 지역 청년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이 생기자, 공감대를 가진

청년들이 하나둘 모였고, 청년도 살고 강진도

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나둘 시작했다.

장성현 씨에게 이웃이 생겼다. 결혼을 앞둔

이상준 예비부부는 신혼집으로 편리한 읍내의

아파트가 아닌 장성현 씨의 집을 드나들며

매료된 병영의 빈집을 선택했다. 리모델링을

위해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낡은 고택에서

보낸 이상준 씨. 불편한 것 천지에 손볼 곳이

한두 곳 아니지만, 예비 부부의 취향에 맞는

스위트룸을 계획하며 사랑도 돈독해졌다.

장성현 씨 부부의 정착으로 강진 지역사회의

골칫거리였던 빈집이 청년 귀농 귀촌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침했던 담배골목에서

핫플(hot place)이 된 충주 관아길

빈집, 청년창업의 요람이 되다

 

빈집 문제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충청북도 충주의 구도심 관아길. 폐가와 쓰레기만

무분별하게 뒹굴던 골목은 불량 청소년들이

담배를 몰래 숨어 피던 담배골목으로 유명했다.

음침한 골목에 변화가 시작된 건 7년 전.

이상창 씨가 빈집을 고쳐 카페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모두 원주민도 떠나는 동네에

무슨 창업이냐며 젊은 패기를 말렸지만,

상창 씨는 충주 색이 짙은 폐가를 골라

리모델링을 시작했고 카페를 열었다.

충주에선 구옥 리모델링의 첫 사례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성 공간을 찾는

2030 젊은이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상창 씨는 카페의 성공과 창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르바이트생들의 골목 창업을

도왔다. 관아길 8개의 상점 사장 중 절반이

상창 씨네 카페 출신. 서울에서 온 조용현 씨는

상창 씨 카페 옆 빈집에 사진카페를 열었고

휴학생인 이준영 씨는 30년 된 낡은 여인숙

건물에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지역 부활의 가능성, 빈집에서 찾다.

 

“다 죽어가는 원도심에서 카페를 차려도

청년들이 모이고 활동하는 모습이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 충주 청년 사장 이준영

 

“시골도 도시와 똑같아요. 문화가 있어야 하고요.

문화의 주체는 지역에 사는 청년 혹은

지역으로 들어올 청년이

되어야 할 거고요. 장소가 있고 할 거리가 있으면

청년들은 모여들더라고요.”

- 강진 귀촌인 장성현

 

빈집의 정취에 매료된 이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그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며 이런 움직임이

청년들에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는 선순환을

꿈꾼다. 청년에게 기회와 가능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빈집이 지역 부활의 불을 지피고 있다!

 

■ 방송일시 : 2023년 3월 24일

(금) 밤 10시 50분 KBS1TV

■ 프로듀서 : 최용수 ■ 연출 : 이기석

■ 글∙구성 : 소현진 ■ 제작사 : JK미디어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남훈 씨의 각별한 말 사랑

 

국내 최초 [말 구조 보호센터]를 만든

제주 출신 김남훈씨

 

연평균 1400여 마리의 경주마들이 경마장을

떠나 퇴역 경주마가 된다

말들이 퇴역 경주마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주의 성적이 좋지 않거나, 경주마의 생명인

다리의 부상이 오면 자연스럽게 퇴역경주마의

길로 가게 된다. 퇴역 경주마가 되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아직 효용 가치가 있는

퇴역 경주마들은 승용말 등으로

용도 전환되고 (약 30% 정도 되는 퇴역마가

해당된다) 나머지 70% 정도의 퇴역 경주마들은

용도 폐기된다. 이렇게 용도 폐기된 상당수의

말들은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3년 전 제주의 한 말 목장에 이런

퇴역 경주마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어느새 36 마리로 늘어났다. 이곳에 있는

36여 마리의 말들은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축 직전에 구조된

퇴역 경주마들이 대부분이다. 제주도의

넓은 중산간 평원에서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살아가는 곳, 이곳의 이름은

[말 생크추어리] 우리말로

[말 구조 보호센터]이다. 이곳을 만든 사람은

전직 프로골프선수 출신인 김남훈(49)씨이다.

미국의 한 말 목장에서 홀스맨십 교육을 받던

중에 충격적인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 영상 속에는 우리나라의 말 도축 실태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퇴역 경주마들의 아픈 현실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느낀 남훈 씨는 귀국 후 [말 구조 보호센터]를

고향인 제주도 중산간에 만들고 위기에 빠진

말들을 구조하고 있다.

 

예고 영상 

 

 

버려진 말 36마리와 남훈 씨의 겨울 생존기

 

제주의 겨울은 혹독해서,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오가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영하 10도 이상

떨어뜨리고 야생의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강추위 속 말들의 삼시 세 끼를 챙기는 것은

오로지 남훈 씨의 몫이다.

36마리 말들의 한 끼 식사에 필요한 건초는

1톤 트럭을 이용해야만 가능할 정도지만

중산간에 내린 폭설로 인해 1톤 차량을

사용할 수 없는 비상 상황, 남훈 씨의

임기응변이 빛을 발한다.

 

최근에는 이곳 말들의 사연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손길도 늘어났다.

아픈 말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가 높은 건초를

후원해주기도 하고 주변 이웃농민들의

도움으로 수확하고 남은 콩깍지나 브로콜리등을

공짜로 가져오기도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극복하는 재미가 있다는

남훈 씨의 유쾌한 하루를 만나본다.

 

퇴역마 춘자의 [말 구조 보호센터] 입성기

 

춘자는 3살, 사람으로 따지면,

한창 혈기 왕성한 꿈 많은 10대 청춘이다.

하지만, 춘자는 경주마로서 잘 뛰지못한다 하여

퇴역되었고 심지어 도축될 위기에 처하게 됐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사람이 춘자를 입양했다.

말굽도 재갈도 채우지 않고 온종일 쓰다듬으며

정성으로 살피던 보호자는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이를 지켜봐 온 지인은 춘자가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남훈 씨와 의기 투합해 춘자를

말 구조 보호센터로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사람과 말과의 교감은 서로를 치유해준다

 

[말 구조 보호센터]에는 종종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말먹이도 주고 바쁜 남훈 씨의 일손을

거들어 주기도한다. 자원봉사로 이곳에 온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는

남훈씨. “말들을 도와주려고 왔는데 오히려

제가 기분이 좋아져요.” 봉사자들의 얼굴엔

기쁨과 생기가 넘친다고 한다.

남훈 씨는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사람들의 친절한 손길 하나, 하나가 말들에게도

그대로 느껴지고 비록 상처받은 말들이지만

어느새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준다고”

 

사람과 말의 우정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남훈 씨의 각별한

말 사랑 이야기를 만나본다.

 

◾방송일시 : 2023년 3월 10일

(금) 밤 10시 50분 KBS1TV

◾연출 : 이정우 ◾작가 : 최정민

◾제작 : 파인픽쳐스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1973년 3월 3일생

 

▶ 대한민국의 중심에 선,

올해 만 50세의 1973년생

 

2023년, 대한민국 인구의 1.8%를

차지하며 올해 만 50세를 맞은 1973년생!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고속 경제성장의 가도에서 태어나

유신 교육의 유산을 물려받으며 성장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 직전

IMF경제 위기 속에서 역대 가장 치열한

취업 경쟁에 내몰렸던 세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와

맞닥뜨린 세대이자 높아진 평균수명으로

고령의 부모세대 부양 의무를 떠맡으며

스스로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준비해야 하는

1973년생.

 

 

 

 

▶ 1973년생 소띠들의

아주 특별한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1973년 3월 3일, 유신체제하 국영방송 KBS가

공영체제의 ‘한국방송공사’로 거듭난 날입니다.

 

지난 2023년 봄, KBS는 공사창립 50주년을 맞아

격동의 50년을 함께 겪으며 성장한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KBS와 생일까지 똑같은

1973년 3월 3일생들과 아주 특별한

동창회를 열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지만, 73년생 소띠들에게

KBS는 동갑내기이면서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세상을 보는 창이었습니다. 한국방송공사

공채 1기(1973년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계진 전 아나운서가 1973년생 소띠들의

삶과 꿈 그리고, 그들이 늘 함께 했던

TV 뒤편의 KBS의 숨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녹록지 않았던 현실,

그러나 간절히 원한다면 꿈은 이뤄진다!

 

‘가난 탈출’이 국가적 목표였던 1970년대,

1973년생 소띠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TV였습니다.

 

방송이 시작되는 저녁시간 동네 만화방이나

TV가 있던 부잣집 친구집으로 달려가 나름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보던 만화 영화와

드라마. 73년생 소띠들에게 그 어린 시절의

TV속 KBS는 꿈과 동심이 자라는 무대였고

집밖의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窓)이었습니다.

 

“개구리 왕눈이가 피리 부는 모습을 보면서

TV에서 피리를 불든, 나쁜 사람을 물리치는

배우가 됐든 그런 독특한 삶을 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김재만(1973년 (음) 3월 3일생, 뮤지컬배우)

 

예고 영상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 경제성장의 절정기,

198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컬러TV와 FM 라디오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국민들은 다양한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계속되는

독재정권의 집권으로 전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정부는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을 탄압하는 암울한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현실 풍자 코미디에 열광했습니다.

 

“사람들이 억압되어 있던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데는 코미디 프로그램밖에

없는 거예요. 풍자하는 것이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어떤 세태라든가... 우리는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코미디를 했어요.“

-김학래(KBS 특채 개그맨)

 

 

 

 

▶ 암울했던 80~90년대 온갖 위기를 이겨낸

대한민국의 저력,그 중심에는

1973년생들이 있었다!

 

컬러TV의 보급과 함께 방송의 영향력과 역할 또한

점점 더 커져갔던 1980년대. 최고 시청률 78%!

국민 10명 중 8명이 시청했을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전쟁으로 흩어져 살던 가족 1만여 명이

수십 년 만에 재회할 수 있도록 오작교 역할을

해주었고,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 스포츠

이벤트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의

유치와 개최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고속 성장의 반작용이었을까요?

곳곳에서 숨겨진 문제들이 불거졌습니다.

TV 속보를 통해 전해진 각종 사건·사고들.

73년생들이 마주했던 대한민국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모순된 곳이었습니다.

 

“(전공이 건축이었는데) 군대에 있을 때

성수대교 붕괴사건하고 삼풍백화점 사건을

뉴스로 봤어요. ‘복학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소임을 다해야겠다’라는 걸 느꼈어요.“

- 임종명(1973년 3월 3일생, 건축시공기술사)

 

곧이어 IMF 사태가 터졌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사회초년생 73년생들은 정든 회사를

뒤로하고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불안한 미래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를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성덕 바우만을 살리기 위한

전국민적인 골수기증 운동, IMF 극복 금 모으기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을 때, 73년생들에게

대한민국은 자부심의 나라였습니다.

 

▶ 달리다 보니 대한민국의 중심세대,

더 큰 세상을 위해 도약!

 

힘들었던 1980~90년대를 버텨낸 73년생들에게

새로운 밀레니엄은 용기와 희망의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가슴 벅차오르는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 2002 한일월드컵 개최 성공과

역대급 대이변으로 불린 4강 신화까지 이뤄낸

대한민국~. TV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응원석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응원단장이었던

2002년. 한국은 IMF를 조기졸업하고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한발짝 다가섰습니다.

이 시기 스포츠 문화에 버금가는 대중문화의

파워도 점차 커지더니 어느새 한류가 돼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K-wave 한류는

대한민국의 또다른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내부에서) ‘KBS가 주도적으로 한류를

이끌어야겠다’해서 한류 추진단을 만들었고,

어떤 식으로 한류를 체계적으로

보급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예능국은 뮤직뱅크를 중심으로

해외 공연을 많이 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KBS월드죠” -오세영(전 KBS 글로벌 센터장)

 

▶ 다시금 찾아 온 시련, 미래세대들을 위한 고민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은 격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난극복일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대한민국의 허리를 책임지던

73년생들에게 찾아온 또 다른 시련,

과연 73년생 소띠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요?

 

대한민국 50년, 격변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함께 성장한 한국방송공사 KBS와 동갑내기

1973년생 소띠들. 반백 년을 돌아 인생의

반환점에 선 그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으며,

또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을까요?

 

3월 3일 금요일 밤 10시 50분, KBS 1TV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다큐온>

“1973년 3월 3일생” 에서 함께 만나보시죠.

 

■ 방송일시 : 2023년 3월 3일

(금) 밤 10시 50분 KBS 1TV

■ 프로듀서 : 최용수

■ 글·구성 : 한승연

■ 연 출 : 박익찬·정태경

■ 제 작 : 스튜디오 WA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잊혀진 역사, 홍주의병

 

■ <마도일기>에 기록된 홍주9의사

 

홍주성역사박물관이 최근 입수한 <마도일기>,

저자는 1906년 홍주의병으로 참여했다가

대마도로 끌려가 유폐되었던 류준근이었다.

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이었다. 류준근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충청도 홍주에서 봉기한

의병의 지도부였다. 열흘 간의 혈투 끝에 홍주성을

다시 함락한 일본은 류준근 등 9명의 의병을

대마도 유배형에 처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해외 유배였다. 이들이 유폐는 당시 조선통감이던

히토 히로부미가 내린 고도의 정책적 결정이었다.

 

홍주의병의 주모자들을 일본 자국으로 끌고 가

철저하게 고립을 시켜야 된다 그러한 취지하에서

대마도 유폐를 정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박민영/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

 

홍주의병들이 끌려간 곳은 대마도 남쪽의

이즈하라, 이들 홍주9의사는 역시 대마도로

끌려온 전라도 의병장 최익현과 함께 치열한

항일 투쟁을 벌였다. 일본 의복을 거부하고

음식을 거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구한말 두 차례의 홍주의병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곧이어 단발령이

내렸다. 전국적인 반일감정이 고조되었고

홍주 유학자들은 1896년 초 김복한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1차 홍주의병이었다. 이들은

홍주성을 무혈점령하고 각 지역에 통문을 돌려

의병 가세를 독려했다. 그러나 관찰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입성 3일 만에 의병 지도부는

체포되고 의병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10년 후인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자주권과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다시 전국적인 의병 봉기가 있었다. 홍주에서는

민종식 대장이 이끄는 의병이 봉기,

홍주성을 점령했다. 2차 홍주의병이었다.

천 여명의 홍주의병들은 열흘간 홍주성을

사수했으나 우세한 전력을 앞세운 일본군

정규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80여 명이 채포되었다.

 

홍주의병은 그동안 산발적인 각개전투의

단계에서 일본의 정규 군대를 대상으로 한

전쟁 단계로 돌입했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죠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관장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일제는 국내외 여론을

무마하고 의병의 전국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9명의 의병핵심 지도부에게 사형 대신

대마도 유배형을 내렸다. 이들이 홍주9의사였다.

 

예고 영상

 

 

■무장독립운동으로 이어진 홍주의병

 

1차 의병장이었던 김복한은 1919년,

유생들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에 이름을 올렸다.

 

김복한의 제자인 홍성 출신의 김좌진에게

백야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김좌진은

무장독립운동에 투신, 1920년 청산리대첩을

거뒀다. 홍성 출신의 민족시인 만해 안용운 역시

독립운동에 생애를 바쳤다. 홍성의병의

정신을 이어갔던 것이다.

 

1910년대 광복회 활동 그리고 삼일운동,

만주의 독립운동, 상해 임시정부 운동으로까지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홍주의병의 정신은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처럼 우리 무장독립투쟁의 시금석이자

독립운동사의 큰 도화선이었던 홍주의병,

이제 잊혀졌던 그 역사를 되살려야 한다.

 

■ 방송일시 : 2023년 2월 24일

(금) 밤 10:50 KBS1TV

■ 프로듀서 : 임세형

■ 연출 : 김달해 / 작가 : 윤영수

■ 내레이션 : 장희문

■ 제작사 : 미디어천지인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

 

▶ 영화 기생충으로 주목받은

반지하 주택, 그 실태는?

 

작년 여름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 만의 기록적인

강수량으로 스무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그 중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이모가

고립돼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됐던 반지하의

비극이 현실화된 것이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서울시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200,849가구로 추정된다. 이는 서울시

전체 3,982,290가구 중 5%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반지하 주택 유형으로는

다가구주택이 39.6%, 단독주택이 36.3%,

다세대주택이 20.8% 순으로 나타났다.

 

지하·반지하 주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지상의

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고

지리적으로도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하지만 지하·반지하 주택의

주요 거주자는 기초생활수급가구 29.4%,

소득하위가구 15.5%, 장애인이 있는

가구 15.5%, 청년가구 12.3% 순으로

정책배려 대상가구가 대부분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반지하의 비극을 끝내고자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기존 주택에 대해서도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없애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터.

이에 서울시와 한국 해비타트 및

기타 건설업체들이 힘을 합쳐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에 참여했다.

 

예고 영상 

 

 

▶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

 

작년 여름 폭우로 인해 집에 발목까지 물이 차면서

마루가 썩어버린 신석찬 씨의 집. 침수 피해를

입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판과 벽지는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곰팡이로

뒤덮혀 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일을 못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장애인직업 재활시설을

다니지만, 집수리는커녕 몇 달째 공과금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 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정용철 씨. 그의 아내는 거동이 불편해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는 평범한 일조차 버겁다.

대낮에도 채광이 되지 않아 집안은 매일

어두컴컴하고 화장실은 곰팡이투성이다.

 

이에 서울시 주택정책실, 주거환경관련

비영리단체, 기타 건설업체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그들을 돕기 위해 뭉쳤다. 현장 조사와

거주자 면담 등을 통해 선정된 신 씨와 정 씨의

집을 전면 수리 공사하기로 한 것!

특히 지체 장애를 앓아 거동이 불편한 정 씨의

아내가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 주택의 경우

실내에서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없애고, 욕실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장애물 없는(Barrier Free)’ 생활환경을

조성까지 약속했다.

 

오는 17일에 방영되는 다큐 온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편에서는

반지하 주택의 실태를 재조명하고

주거 약자의 안전을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따뜻한 여정을 소개한다.

 

 

 

 

▶ 정리 달인, 이지영 공간크리에이터 등

이웃들의 도움 이어져

 

반지하 주택의 새로운 변신,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는 약 한 달간의 리모델링 공사 기간과

민·관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진행됐다.

특히 가구별 맞춤형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투입됐다.

 

먼저, 의뢰인들의 집을 그야말로 ‘환골탈태’

시켜주고 있는 화제의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도 출격해 힘을 보탰다.

이지영 대표는 인테리어·정리수납 노하우를

비롯해 거주자들이 ‘비움’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치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이지영 대표와 더불어 사진관을 운영하는

한 이웃은 무료로 가족사진 촬영을 지원했다.

침수로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던 신 씨 가족에게

새로운 추억을 선물 한 것. 그리고 특허 기술로

제작된 장애인 맞춤 신발을 제작하는 업체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전동휠체어에만

의존했던 정 씨의 아내에게 맞춤 신발을 제작해

지원했다. 그들은 작은 정성이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며 어려운 생활을 지냈지만

민·관을 비롯해 이웃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된 주인공들. 반지하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사연은 2월 17일(금)

밤 10시 50분,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속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KBS1TV 다큐 온

<반지하 주거개선 프로젝트 행복한 家>편이

찾아온다.

 

■ 방송일시 : 2023년 2월 17일

(금) 밤 10:50 KBS1TV

■ 프로듀서 : 최용수

■ 연출 : 조윤태, 강민석 / 작가 : 원진주, 김보경

■ 내레이션 : 엄태국

■ 제작사 : 유니크미디어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내 손에 On 예술, 온라인미디어 예술

 

전 국민의 97%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

빠른 변화에 발맞춰 문화예술을 즐기는 방식도

진화했다.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해외의

실시간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국내외 유명 미술 작가의 전시도 손에 들린

작은 스마트폰 하나면 쉽게 즐길 수 있다.

시공간 제한이 없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문화예술가들도 온라인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공유했고, 더 많은 대중들이 보게 되면서

문화예술이 어려울 것이란 장벽은 점점

허물어졌다. 어떤 이유와 장점으로 수많은

문화예술가들이 온라인미디어에 매료되었는지

문화예술가와의 만남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온라인미디어 성공시대]

 

온라인미디어를 통해서 작품에 대한

피드백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팬 층까지

다양해지다보니 온라인미디어예술로 뛰어드는

문화예술가들은 더욱더 늘어났다. 올해 77세의

조도중 화백은 현재 누구보다 활발한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그의 흙 예술 그림 영상이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해외 갤러리들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흙 예술(Soil art)이라는 전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기법으로 수 십 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런데 조화백의 아들이자 매니저인 조현범 씨는

한평생 그림을 그려온 아버지를 위해

각종 소셜 미디어 데이터를 활용하여 그림을

홍보했다. 그 결과 해외 수많은 유명 갤러리들이

조화백의 그림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의 A 갤러리부터 이탈리아의

P 갤러리까지. 세계 미술사에 평가받고 싶었다는

조화백의 포부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역량과 예술을 발휘하기

위해서 조도중 화백 외의 다른 창작자들은

어떻게 온라인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온라인미디어예술의

성공 사례를 찬찬히 살펴본다.

 

예고 영상 

 

 

[온라인미디어와 예술]

 

온라인 미디어와 문화예술의 상승효과는

성공적이었다. 기존에 있던 독자층보다 더 넓은

부류의 사람들도 예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온라인 미디어는 콘텐츠의 다양화로

즐길 수 있는 장르의 폭이 넓어졌다.

특히 일반인에게 난해한 현대무용을 하는

모든컴퍼니는 온라인 미디어의 확산성을 절실히

느꼈다. 2021년 제작한 ‘모든 투어’가 온라인을

통해 영국의 한국페스티벌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모든컴퍼니 대표 김모든 씨는

앞으로도 오프라인 공연 외에 온라인미디어에

활용하는 댄스필름을 꾸준히 제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온라인 그 이상의 예술]

 

언제나 과학 기술의 발전은 문화예술 트렌드를

바꾸는데 기여를 해 왔다. 미술사조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예술분야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21세기, SNS발달과 과학발전은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을 만들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이 메타버스‘를 활용해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으로

개최하던 텐트 영화제가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메타버스 세계로 텐트 영화제를 끌어온

스튜디오 요그는 메타버스 텐트 영화제를 통해

기존에 만났던 관객이 아닌 해외관객까지 만나는

놀라움을 경험했다. 이제는 메타버스를 통해

’텐트 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스튜디오 요그!

 

그들을 통해 메타버스를 통한

문화예술의 가능성을 알아본다

 

이 밖에도 시각예술부터 공연예술까지,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온라인미디어가 문화 예술계를 어떻게

변화 발전시키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본 방송은 2023년 2월 10일

KBS1TV 밤 10시50분 다큐 온에서 방송된다

 

■방송일시: 2023년 2월 10일

(금) 밤 10시 50분 KBS1TV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다큐 On 미리보기

 

101마리 젖소의 특별한 비행,

나눔의 가치를 싣고 네팔에 가다

 

어린 젖소 101마리가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다

네팔의 시골마을로 이민을 떠나는 젖소들

비행기로 여덟 시간, 화물차로 열 시간

과연 젖소들은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을까?

 

101마리 젖소가 네팔에 가는 이유는?

 

1. 101마리 젖소가 비행기를 탄다?

한국에서 네팔까지 전일정 밀착취재

 

유난히 추웠던 지난 12월, 화성의 한 목장에선

방역작업이 한창이다. 톱밥 깔짚도 푹신하게

깔았다. 물 온도 18도를 유지하는 열선이 깔린

물통, 최고급 사료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40년 넘게 젖소를 키워 온 목장주와

방역 전문가, 50년 경력을 가진 수의사도

출동했다. 이들이 정성스럽게 맞이하는 손님은,

다름 아닌 어린 젖소들! 무려 101마리다.

이래봬도 전국의 농장에서 혈통과 건강상태를

확인해 뽑힌 젖소들이다. 젖소들이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이민을 가기 때문.

 

 

 

 

생우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건

우리나라에선 처음 있는 일! 더구나

카트만두 공항 사정으로 젖소는 화물기가

아닌 여객기에 태워야 한다.

 

젖소 승객이 처음인 항공사 운송담당자들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적절한 기내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해 젖소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와

산소 양을 따지고 무게를 계산해 젖소 승객 수를

결정한다. 젖소를 실은 케이지 제작도 관건.

해외 동영상을 분석하고 끊임없이 테스트를

하며 수정작업을 이어갔다.

 

101마리 젖소 특급 수송 작전은 과연,

무탈하게 성공할 수 있을까?

 

2. 젖소가 네팔에 가는 이유는?

 

네팔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전체 인구의

약 80%가 농촌에서 살고 있는데 대부분

우유를 짤 소를 키우고 있다. 네팔에서는

그만큼 낙농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전국에

약 750만 마리의 젖소가 있는데, 문제는

우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2021년 네팔 정부는 우리나라에

젖소를 요청했다. 네팔의 토착 젖소와 비교했을 때

우리 젖소의 연간 마리당 산유량은

10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젖소를 주목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불과 70년 전에는 우리도

낙농 불모지였다. 목초지가 부족한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 ‘한국형 젖소’가 네팔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

 

우유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신둘리 마을 주민들은 우리 젖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열한 살 스리자나 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를 짠다. 우유를 팔아 번

돈은 우리 돈으로 15OO원 정도. 선생님이 꿈인

스리자나 팅은 더 많은 우유를 만들어 줄

한국 젖소가 큰 선물이다.

신둘리 마을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예고 영상 

 

 

3. 세계5위의 K-낙농,

그 시작은 ‘노아의 방주 작전’으로부터

 

한국 젖소의 우유 생산량은 세계5위로

낙농 선진국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우리 낙농산업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그 시작에는 ‘노아의 방주 작전’이 있었다.

젖소 떼를 몰고 초원이 아닌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목동들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한국에 이들이

왔었다.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헤퍼 인터내셔널이

주도한 가축 보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헤퍼 인터내셔널은 1952년부터

1976년까지 3천200여 마리의 가축을

한국에 보냈는데 여기에 젖소 897마리도 있었다.

 

항해하는 목동은 약 300여명이 동원됐다.

수송선 마다 20여 명이 동승해 약 7주간

가축들을 돌봤다. 목동 역할을 했던 넬슨 목사는

당시 상황을 일기로 남겼다. 당시 기록을 공개한다.

 

낙농업의 시작, 젖소를 데려온 항해하는

목동 이야기를 만나보자.

 

 

 

 

4. 크라우드 펀딩과 어머니의 유산 등 기부행렬

 

원조 받는 젖소 수혜자였던 이재복 씨는

당시 젖소 두 마리를 받아 목장을 시작했다.

현재는 아들이 목장을 이어 받아 젖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두 마리 젖소가 네 마리가 되고,

다시 여섯 마리가 되면서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킬 수 있었다는 이재복 씨.

아들 농장에서 가장 건강한 젖소를 기부했다.

 

40년 젖소를 키운 목장주는 네팔 근로자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가장 아끼는

젖소 5마리를 선뜻 내놓았다.

 

어머니의 유산을 기부한 딸도 있다.

남몰래 선행을 이어온 어머니 발자취를 따라

뜻을 이어가기로 한 것. 50마리 젖소를 기부했다.

쿠키를 만들어 판 돈을 모은 고등학생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도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 농가와 기관들도 동참을 했다.

101마리 젖소는 이렇게 모아졌다.

 

5. 네팔 시골마을에 젖소떼가 떴다!?

 

8시간 비행을 마치고, 화물차로 10시간을

달려 온 네팔 신둘리 마을. 대이동을 마친

젖소들이 마을 공터에 우르르 쏟아졌다.

마을 주민들과의 첫 대면식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밧줄로 만든 굴레고삐를

젖소에 끼우느라 달리고 넘어지고...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빠른데다가 힘도 좋은 한국 젖소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만족감이 크다. 살림 밑천이

될 젖소들이기에 웃음꽃이 떠나질 않는다.

‘스리자나 팅’의 가족도 젖소 두 마리를 받았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우사를 찾은

스리자나 팅, 빨리 젖소와 친해지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새 젖소 식구를 맞이한 ‘스리자나 팅’을 만나보자.

 

■방송일시 : 2023년 2월 3일(금)

밤 10시 50분 KBS1TV

 

 

[출처] kbs , 네이버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