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On 미리보기

 

어느 독립운동가의 부전자전기(父傳子傳記)

 

원산 3.1만세운동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이가순

세브란스 의전 출신의 아들 이원재

망국의 한을 품고 조국을 떠난 아버지와

고학으로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아들의

눈물겨운 20년만의 해후!

 

고양시에서는 매년 봄, 독립운동가 이가순과

그의 아들 이원재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황해도출신의 이들 부자를 경기도 고양시가

추모하게 된 데에는 숨은 감동스토리가 있다.

 

독립운동가 이가순은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뛰어 들고자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동생에게

맡긴 채 러시아 연해주로 떠난다.

본명인 이치현을 버리고 이가순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연해주의 중심 한인단체인 권업회와

더불어 민회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교민들을

정착시키고 광복군을 키우면서 20년간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러던 중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오자

비밀리에 원산으로 잠입하여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연결과 자금공급을 전담하게 된다.

 

 

 

 

한편, 고향에 두고 온 장남 이원재는 어머니의

지극한 뒷바라지 덕분에 서울의 태극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지만 극심한 가난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학업이 중단된다. 다행히

해주를 돌던 선교사의 눈에 띄어 다시

배제학교를 거쳐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다.

당시 그의 뒤에는 그를 아들처럼 돌봐준 당대의

영웅 노백린장군이 있었다. 노백린의 자녀들을

위한 가정교사로 일하던 그는 큰딸인

노숙경과 결혼을 하고 당당히 의사 면허를

취득해서 원산에 있는 기독병원으로 부임한다.

 

그곳에서, 아들 앞에 나서 면목이 없는

아버지 이가순과 아버지를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20여 년을 달려온 아들의 눈물겨운

해후가 이루어진다. 이후 노백린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이가순과 이원재는 잠시나마

원산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해외에서 오래 독립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

이가순은 고향의 후배이기도 한 노백린 장군을

돕기 위해 아들 부부를 중국으로 보낸다.

 

예고 영상 

 

 

하지만 그 직후 원산 3.1운동을 주도했던

이가순은 고령의 몸임에도 최고형을

언도받는다. 한편 하얼빈의 이원재는 병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막대한 자금을

노백린 장군에게 지원하여 독립운동과

광복군 양성을 돕는다. 이원재가 다시

귀국한 것은 1924년. 아버지의 권유로

강릉에 정착한 이원재는 1927년 신간회가

발족하자 아버지와 나란히 원산과

강릉 신간회 대표가 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해나간다.

 

농촌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전 재산을 쏟아부어 행주벌에 수로를 놓다

일제의 폭압도 멈추지 못한

이가순 이원재의 농민 살리기

 

그즈음 이가순은 함께 원산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오화영 목사를 통해 고양농촌의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된다. 일제의 강제점령이

길어질 것을 예감한 이가순, 이원재는 민족이

잘 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수리사업을 통해 고양군의 농민들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이가순과 이원재는

사재를 털어 수리사업을 시작하는 한편

지역 농민들과 유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1933년, 이가순, 이원재 부자는 상습범람지역

인 고양의 한강변 땅을 사들인다. 그리고

한강변에 제방을 쌓아 범람을 막는 한편

행주산성 인근의 산을 뚫고 한강물을

끌어들여 논에 물을 공급한다. 처음에는

불과 2.,3킬로미터로 시작된 농업용수 공급은

확장을 거듭해 불과 몇 년 만에 고양시

농지의 절반에 물을 공급하게 된다.

 

이가순은 수리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던

1943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이원재와 고양농민들은 더 이상 개인의 돈으로

수리사업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보조금을 받기로

결정한다. 수백 장에 이르는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해방이 되었던 1945년 봄에 인가를

받는다. 이때 받은 보조금은 무려 150만원,

10년간 이원재가 투자한 돈의 4배 가까운

보조금으로 이원재는 고양의 수리사업을

더욱 견고하게 발전시켜나간다.

 

고양군은 소작농이 지주가 되는

기적의 현장이 되고

전국 제일의 농협으로 성장하다.

매년 4월 7일, 이가순 부자를 기억하는 고양시민들

 

이가순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3년 7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의사로,

수리조합장으로 십 오년 가까이 일했던

이원재는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초,

6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농민들의 주도로

고양군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그 사이 소작농이던 고양의 수리조합

소속 농민들은 해방 후 토지개혁을 통해

농지를 분배받게 된다. 내 땅이 있는 농민이

된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고양군의

농촌은 전국에서 가장 재무구조가 든든하고

활력있는 농협으로 성장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난세에 태어난 이가순 이원재 부자는

평범한 아들과 아버지로서의 행복은 누리지

못했다. 특히 이가순에게 이원재는

늘 미안하기만 한 아들이었다. 이가순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아들이 어렸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원재는

의사로서 활동하며 평생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갑자기

농지개척을 하자고 할 때에도 그는 필요한

재정은 물론 장비 구입 및 조합 결성 및

까다로운 농지 등록에 이르는 모든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아버지와 함께 했다. 이가순,

이원재 부자는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산을

모두 독립자금과 가난한 이들의 구제를

사용했고 자녀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해마다 4월 7일이면 고양시 씨족 대표들이

모여 이가순에게 감사제를 올린다. 세상은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벌써 80년째

이가순과 이원재를 생각하는 추모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나라 잃은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난 이들 부자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다.

 

다큐온 <어느 독립운동가의 부전자전기>는

한 순간의 열정이 아닌 평생의 삶과 희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한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 대한민국의 삶이 어떤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왔는지, 또한 참다운 독립운동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끝)

 

■ 방송일시 : 2023년 6월 17일

(토) 밤 10시 25분 KBS1TV

■ 프로듀서 : 송철훈

■ 작가 : 이소윤

■ 연출 : 이시우

 

 

[출처] kbs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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