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On]

용산공원 

1부 안과 밖 두 개의 시선 

2부 경계 허물다 

용산기지 

기지 밖 사람들

국가공원 


  


다큐 On 미리보기


용산공원 1부 – 안과 밖, 두 개의 시선


❑ 기지 안 사람들, 생활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던 제2의 고향


  서울의 한복판, 한강과 남산 사이 섬처럼 

존재하는 그곳. 13km에 이르는 담장을 둘러싸인 

그곳, 용산기지. 1904년 러일전쟁을 빌미로 

일제의 군대가 주둔한 이후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며 미군에 공여되기까지 117년간 금단의

 땅으로 남아있던 곳이다. 철조망 두른 담장 안은

 미8군 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등 

주요 군사시설은 물론 학교, 쇼핑몰, 호텔, 

소방서 등 생활시설까지 공존하는

 그들만의 작은 도시가 되었다. 


  용산기지 내 서울아메리칸스쿨 졸업생인

 조지 메이 씨가 사진과 함께 전하는 60년대

 용산기지 안은 푸른 잔디와 햄버거, 그리고 

수세식 변기가 일상이었던 신세계였다. 

1977년 용산기지에 첫발을 내디딘

찰스 우드럽 씨가 기억하는 용산기지는 

일제강점기 건물이 버티고 있던 독특한 

모습이었다. 1971년 미국으로 입양됐던

 어린 소년은 카메론 송 샐러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용산으로 돌아왔고 대령으로 군생활을

 마감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온

 기지 내의 삶과 그들이 느꼈던 담장 안과 밖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안과 밖, 경계를 넘나들었던 사람들


  70년 가까이 이질적인 공간이었지만 

안과 밖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세월을 

거쳐왔다. 그 교류의 중심에는 안과 밖 그 경계를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있다. 카투사로 근무했던 최

경호 씨와 서울아메리칸스쿨 한국문화사 교사로 

근무했던 최원호 씨에게 용산은 역사의 무게를

 곱씹어보게 하는 곳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8군 쇼라 불리던 

한국 대중음악의 별세계가 존재하던 곳이기도

 했다. 용산기지 내 클럽 무대에 올랐던 

윤항기 씨와 재키박 씨. 그들이 기억하는

 미8군 쇼의 흥망성쇠를 들어본다. 




❑ 기지 밖 사람들, 우리의 삶은 계속 됐다


  용산기지가 들어서면서 평범한 농촌에서 

기지촌으로 변신한 이태원은 이후 값싸고 

품질 좋은 맞춤양복과 보세물품을 살 수 있는 

쇼핑투어의 명소이자 유흥의 거리로 거듭나게

 된다. 이태원이 고향인 양복점 대표 장진국 씨와 

이태원 입구에서 외국서적 전문 중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기웅 씨를 통해 미군부대와 

함께한 이태원의 변화를 들어본다.


  삼각지 일대는 일명 몽마르뜨 거리였다.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시작된 삼각지 

화랑거리. 여전히 이곳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영 씨는 화랑거리의 산 증인이다. 

박수근과 이중섭이 미군 초상화를 그렸던 

시절부터 일명 이발소 그림이 해외로 불티나게 

수출됐던 시절까지 그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가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삼각지 회전입체교차로에 얽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해방 직후 월남 피난민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 

해방촌. 60년 가까이 해방촌 입구에서 옹기를

 팔고 있는 신연근 씨가 지켜본 해방촌은 

변화는 극적이다. 하꼬방 판잣집에서 미싱 소리

 가득했던 반지하 스웨터 공장을 거쳐

 미군 사병들의 거주지로 변하기까지,

 용산기지와 함께 변해온 해방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용산공원 2부 – 경계, 허물다 

  

❑ 기지에서 공원으로, 117년 만에 돌아온 땅

 

  작년, 학계와 전문가로 구성된 용산기지 내

 시설물 기본 현황조사가 진행됐다. 2017년 

미8군 사령부의 평택 이전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미군이 이전했지만 약 10%의 미군이 남아있는

 까닭에 여전히 조사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들여다본 용산기지 안은 외부의 도시발전 

상황과 결을 달리한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강으로 흘러내렸던 만초천의 일부 

구간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냈던 국가제례시설 남단터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군 2개 사단이 주둔하는

 병영이었던 까닭에 군 사령부와 관사, 

위수감옥 등 각종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후

 주둔한 미군이 일본군이 남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수와 증축을 이어가는 식으로 운용해온

 덕분에 기본적인 기지구획은 과거 조선군사령부

 때와 별 변동 없이 유지돼 온 것이다. 

용산기지 내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적 등 

흔적과 그 가치를 살펴본다. 


❑ 공론과 커뮤니티,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공원

  

  서울이라는 대도시 한가운데 조성될 

국가공원 1호 용산공원. 도시공원은 어떤 

의미이며 용산공원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할까.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 ‘하이드파크’는

 왕실이 소유한 사적공원을 대중에 개방한 

근대 도시공원의 효시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서

 공원의 가치를 인식시킨 첫 사례이자

 런던이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운터하잉 자연공원은 군사비행장이 

공원으로 변모한 사례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군기지와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되었던 나라 독일. 통일 이후 군기지는

 사회적 공공성의 원칙 아래 시민의 품으로 

하나둘 돌아왔다. 뮌헨 인근에 위치한 운터하힝

 군사비행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7년 부지를

 매입한 시는 2001년부터 단계적으로 개발에

 착수했고, 공원 조성은 물론 관리와 홍보 등 

대부분의 단계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했다. 

현재 이곳은 활주로는 물론 벙커 등 전쟁의 

흔적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상업시설은 완전히

 배제한 자연생태공원으로의 변모했다. 수많은

 멸종위기종 동식물들이 둥지를 틀었고 주민들은

과수원을 조성하며 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 함께 만드는 희망의 공간


  용산공원은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이자

 남산과 한강을 잇는 녹지·생태축 역할을 하는 

생태 문화공원이라는 큰 틀 아래 차근차근 

변화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작년 7월 

미군 관련 시설로는 최초 우리 국민에게 

개방된 용산기지 장교숙소 5단지는 이 과정의

 일환이었다.  2021년 현재 확정된 용산공원의

 넓이는 300만㎡에 이른다. 이 공원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용산공원은 국가가 시혜처럼 베푸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국가공원이기 때문이다.


❑ 방송일시 : 1월 29일 (금) 밤 10시 50분

❑ 방송일시 : 1월 30일 (토) 밤 11시 40분

❑ 제 작 사 : 스토리엘 

  

예고 영상



  

[출처] kbs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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