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프라임]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전란 속에 성장하다
임진왜란
선조실록
선조국문유서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전란 속에 성장하다>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전란 속에 성장하다
1592년 4월 13일, 20만의 왜군이 바다를 건너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하루만에 부산포와 동래가
함락됐다. 조정은 군대를 급파했지만 연이은 패배
소식만이 돌아왔다. 코 앞까지 다가온 왜적을
피해 4월 30일 선조는 도성을 떠났다. 그리고 사흘 뒤
한양이 함락된다.
왜, 한글을 이야기하는데 임진왜란인가?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왕이 한글을 통해
백성들과 직접 소통한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실록의 그 기록을 입증하듯이 고문서 한 점이
42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에 전한다.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다’ 라고 시작하는 <선조국문유서>는
임진왜란 시기의 전황과 한글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이다.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다
너희가 처음 왜적에게 잡혀서 끌려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이제는 너희가 그런 의심을 품지 말고 서로 권하여
나오면 너희를 특별히 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공에 따라 벼슬도 시킬
것이니 너희가 절대 전에 먹었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오라. (후략)
선조가 백성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한글로 작성한
고문서 <선조국문유서>는 조선시대 한글의 쓰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건국대학교
역사학과 신병주 교수는 <선조국문유서>의
의미를 ‘현대의 대통령이 다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국민과 직접 대화를 해 보겠다고 말하는 상황과도
닮아 있는 모습’이라며 ‘선조가 소위 언문 교서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전쟁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글이나 문서는
한문으로만 작성하던 시대에 임금이 한글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백성과 소통한 사실을
볼 때, 온 백성의 언어로서 한글의 사회적 성장과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들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과
급변하는 조선 사회 속에서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어 이 땅의 주체적 문자로 자리매김하는
한글을 보여준다.
“어찌 계시는지 제일 걱정이오”… ‘한글 편지’에
담긴 사랑, 그리움 그리고 미움
요사이 추위에 어찌 계신지 제일 걱정이오. 나는
산음 고을에 와 있어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되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소. …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좋겠지만 기약하지 못 하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1592년 12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학봉 김성일이
안동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고향에 있는 아내와 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 편지는 내용의 감동보다 사대부 남성이
아내에게 보낸 한글편지라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에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저급한
언어가 아니라 임금은 물론, 양반 남성들도
일상에서 쓰는 문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한글이 변화하는 모습은
그 시대에 만든 묘에서 발견한 한글 편지들이
보여주기도 한다. 1500년대 중후반에 쓴 순천김씨
한글 편지는 당시 서민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1490년대로 추정되는 나신걸 군관이
아내에게 쓴 한글 편지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부자 교수는
나신걸 군관의 편지를 보면 ‘훈민정음이 창제 된
후 50~60년 사이에 이미 지방 아녀자들도 한글을
읽을 정도로 한글 보급이 상당히 빨랐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임진왜란 직후, 17세기 초 현풍곽씨의
한글 편지에는 장모에게 아이들 한글 교육을
부탁하는 내용도 있어서 한글 교육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한글의 성장과 함께,
편지 속 조선의 흥미로운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다.
방송일시
2018년 10월 9일(화) 밤 9시 50분 ~ 10시 45분
[출처]ebs1
pi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