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On 미리보기
설 기획
화가의 여행 가방
신안 앞바다의 섬들을 3년째 여행하며
섬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섬마을을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는 화가가 있다.
화가 안혜경(58세) 화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발길이 머무는 섬에는
사라져 가는 ‘고향 풍경’이 있고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들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섬 안에 갇혀 있는 ‘정지된 시간’과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진 역사’가 있다.
고향의 풍경과 부모님들이
그리워지는 설날을 즈음하여..
화가의 섬마을 여행에 동행하며
소멸해 가는 시간 속에 우리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고향의 모습’과
그녀의 화폭 속에서 비로소 ‘주인공’이 된
‘우리네 어머니’들의
골 깊은 삶의 역경과 ‘인생 스토리’를 들어본다.
▶내 고향 섬마을
-“화가는 왜 가방 하나 들고 이곳에 왔을까”
신안군 자은도에는 작고 오래된 방앗간이 있다.
이곳에서 어머니들은 설에 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가래떡을 뽑고, 기름을 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풍경. 그러나 이곳은
누군가의 ‘고향’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친정’이었으며, 어느 누군가에겐
‘유년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설 대목을 맞아 북적이는 이곳에 화가가 출장을
왔다. 안혜경(58) 화가는 이곳에서 사라져 가는
고향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인생살이를 녹음하여, 그들의
인생 스토리를 글로 써서 전시한다.
이름하여 섬마을 <움직이는 미술관>
(노매드Nomad 미술관) 프로젝트다.
화가의 화폭에 담긴 사라져 가는 것들, 아쉽기에
붙잡고 싶은 우리네 ‘고향의 풍경’은 어
떤 모습일까. 그녀가 기록한 자은도 풍경을 통해,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
소멸해 가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과 가치에 대해
성찰해 본다.
▶고향의 역사를 기억하는 곳 <쌍샘 점방>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드라마’가 연출된다.”
신안군 안좌도에는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쌍샘 점방>이 있다. 이곳에서 화가는 라면을
끓여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마을 사람들과의
이웃이 된다. 이곳에선 누군가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또 누군가의 소식에 배꼽 빠지게 웃는다.
살아 있는 ‘인생 드라마’의 현장이다.
화가는 바로 이런 풍경을 기록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살아 있는 어머니들의
얼굴을 그린다. 화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섬마을 사람들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의 드라마’를 담아보고,
화가의 화폭에 담긴 고향 사람들의
자화상을 만나본다.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역동적이에요.
다이내믹하죠.
그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들.
바로 그럼 어머니들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화가 안혜경(58)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초상’
-“살아 있는 ‘인생 아카이브’입니다.”
화가는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안혜경(58) 화가의 가장 큰 역할은
섬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인생사 굴곡진’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털어놓는다.
“내 인생 다 받아 적으면 소설책 3권은 나와”로
시작되는 어머니들의 길고 긴 이야기. 남편이
바람을 피워 새살림 차렸다는 얘기,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었다는 사연,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사연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머니들은 이 과정을 통해 오래 묵혀왔던
‘마음의 짐’을 털어 내고,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들어 주려 하지 않았고, 어머니들
스스로도 내 새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화가를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고, 도화지 위에서
주인공이 되며, 의미를 갖는다.
자식들도 미처 몰랐던 어머니들의 속 깊은 이야기.
그것은 과연 무엇일지... 귀 기울여 들어 본다.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한 ‘본명 선언’
-“부모님들의 얼굴과 이름의 가치를
찾아주는 일입니다”
화가가 만난 수 백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이 주름지고 볼품없다고
생각한다. 이름 또한 촌스럽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여긴다. 광주리 머리에 이고 발품을 팔아
살림 밑천을 마련했던 어머니. 남동생 다섯 명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큰 누나.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또 누군가의 며느리로만
불려왔고 심지어 서울 댁, 청주 댁 등의
출신 지명으로 호칭되어 온 우리 시대 어머니들...
그래서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어머니의
가장 빛나는 표정을 포착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장에 걸어 준다. 그리고 그림 옆에
손공례(86), 김광심(84), 박선자(72),
박수례(76)등과 같이 그들의 본명을 써서
이름을 불러준다.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얼굴과 그들의 이름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찾아주기 위함이다. 어머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수 백 명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그들의 얼굴이 빼곡히 내걸린 전시장 벽면은
그 자체로 ‘인생 아카이브’가 된다. 그것은
수많은 부모님들의 인생 스토리로 엮어낸
‘살아 있는 역사’이다.
“우리 어머니들을 예쁘게 그려서 전시해 줌으로써
‘그래, 나도 잘 살았어.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이야‘
어머니들이 이런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화가 안혜경(58)
■ 방송일시 : 2023년 1월 20일
(금) 저녁 10시 50분 KBS1TV
■ 프로듀서: 최용수 ■ 글·연출 : 임미랑
■ 내레이션: 강애심(배우) ■ 제작사 : 지을작作
[출처] kbs , 네이버